중구문화관광

-   문화재   -


답동성당
격동의 역사 속에서 지어지다


규모 991.74m² 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이다. 답동 성바오로성당은 1889년 프랑스 외방전 교회 소속 빌렘 신부 J.Wilhelm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며 답동 언덕에 임시 성당으로 가옥을 마련한 것에서부터 역사가 출발한다. 국내외 정세로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10여 년이 지난 1900년에 완성되었다.
건립 당시 답동성당은 직선적이고 뾰족한 첨탑이 특징인 고딕양식으로 지어 졌으나, 1937년 증축하면서 건물 외관을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리고 아치와 둥근 돔이 특징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공사를 하였다. 건물에는 3개의 종탑이 있고 각 종탑마다 8개의 작은 돌기둥이 8각의 종 머리 돔을 떠받들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계단과 긴 아치형으로 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조화와 질서를 유지해 장엄함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9월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답동성당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하며 오래된 건축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우리나라 근대화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여행 TIP!  >  3개의 종탑 중 중앙의 큰 종탑에는 동종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일제에 의해 수탈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당 경내에는 6.10 민주항쟁의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답동성당은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쫓기는 민주인사들과 학생, 노동자들을 품어주었던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50번길 2

전화번호 : 032-762-7613 성당사무실 

이용시간 : 상시개방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이용요금 : 무료

주요시설 : 성당, 답동문화관 

편의시설 : 화장실 

주변 관광지 : 신포국제시장



구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
인천의 개항사가 기록되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구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은 후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으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다. 1883년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로 사용되었다가 1888년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다. 초기에는 해관세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금괴, 사금의 매입 업무를 대행했으며, 이후 예금과 대출 등 기본 은행 업무를 해왔다. 1909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변경되었다가 1911년 조선은행 인천지점이 되었다. 광복 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다가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1899년 건물 준공 당시 면적 211.57m²의 석조 단층으로 국내 최대급의 건축 물이었다. 사용된 재료 중 모래, 자갈, 석회 등을 제외한 벽돌, 석재, 시멘트, 목재 등은 전부 일본에서 들여왔다. 외벽은 화강암으로 다듬어 쌓고, 처마 부조에는 둥근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을 올렸다. 지붕은 용마루 부분과 동판으로 가공된 돔형으로 만들어졌으며, 경사지붕은 원래 기와를 얹었으나 현재는 개조된 상태이다.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여행 TIP!  >  인천개항박물관은 4개의 상설전시실과 유물 창고, 학예실,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1883년 개항 이후부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 이전까지의 유물 321종, 669점이 전시되어 개항기 인천 지역 근대문화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제1전시관은 인천개항장의 근대 문물을, 제2전시관은 한국 최초의 경인 철도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관에서는 개항장 일대의 거리 풍경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제4전시관에서는 인천의 전환국과 금융 기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89

전화번호 : 032-760-7508 인천개항박물관 

이용시간 : 09:00~18:00 (입장 마감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이용요금 : 성인 500원 / 청소년 300원 / 어린이(만12세이하) 무료 

주요시설 : 전시실 

편의시설 : 안내데스크, 화장실 

주변 관광지 : 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구 일본18은행 인천지점
인천의 근대건축을 엿보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구 일본18은행 인천지점은 1980년 개설한 일본은행으로 고전적 장식의 절충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 금융을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현재는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개관해 인천의 주요 근대건축물 모형과 영상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단층 건물로 정교한 출입구의 석주 장식과 목조 트러스 위에 일본식 기와를 얹은 모임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고전적 장식의 절충주의 양식을 반영해 벽체는 조적 위에 몰탈 마감으로, 기둥과 기단은 돌로 마감되어 있다. 2002년 12월 23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여행 TIP!  >  3개의 전시실과 근대건축물의 풍경이 있는 야외 휴식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당시 일본, 청나라 등 각국의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진 이국적인 조계지의 풍경과 근대 초기의 건축물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소실되어 볼 수 없는 근대 건축물도 재현해 놓았다. 건축물을 통해 근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근대문명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77

전화번호 : 032-850-1481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이용시간 : 09:00~18:00 (입장 마감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이용요금 : 성인 500원 / 청소년 300원 / 어린이(만 12세 이하) 무료 

주요시설 : 야외휴식공간, 전시실 

편의시설 : 안내데스크, 화장실 

주변 관광지 : 인천아트플랫폼, 구 일본 제58은행, 한국근대문학관



인천 중동우체국
우정 역사의 출발을 알리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인천중동우체국은 우리나라의 우정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통신은 1884년 한성의 우정총국과 인천의 우정분국 간의 우편업무를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인천지역에는 1884년 11월 우정총국 인천 분국이 설치되었으나 같은 해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폐지되며 업무가 중단되었다. 1895년 7월 새로운 우편사업이 재개되면서 한성과 인천에 우체사를 설치해 우편업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1905년 4월 한일통신기관협정으로 우리나라 통신권이 강탈당하게 되었다. 국내 통신기관을 일본 우편국과 통합하여 운영하며 ‘우체사’의 명칭을 일본식인 ‘우편국’으로 바꾸고 금융업무도 취급하였다. 이후 인천우편국은 1923년 12월 중구 항동에 2층 규모로 새 청사를 짓고 이전하였다. 광복 후 1949년 ‘인천우편국’을 ‘인천우체국’으로 명칭을 바꾸어 운영하다가 현재는 ‘인천중동우체국’이라는 이름으로 업무가 지속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천중동우체국 앞에는 개국 110주년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으로 역사적 상징성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큰 곳이다.

여행 TIP!  >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은 방식으로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벽돌조 건물이다. 입구 양쪽에 큰 기둥을 세우고 출입구를 사거리 방향으로 돌출시켰는데 좌우로 펼쳐져 원형보다 커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수평선을 강조한 지붕 돌림띠와 정문 좌우 지붕 위에 올려놓은 두 개의 사각 지붕도 눈길을 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서해대로 366 정석빌딩 1층

전화번호 : 032-773-2106

이용시간 : 평일 09:00~18:00 

휴관일 : 주말, 공휴일 

이용요금 : 무료 

주요시설 : 우체국

편의시설 : 화장실

주변 관광지 : 답동성당, 신포국제시장



팔미도 등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다


1903년 6월 높이 7.9m, 지름 약 2m 규모로 건립된 팔미도 등대는 해발고도 71m의 팔미도 꼭대기에 설치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이다. 인천항이 개항되며 선박 운항이 잦아지자 1902년 3월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해 5월부터 인천항 입구 팔미도, 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 백암 등표 건설에 착수하여 1903년 6월 1일 점등하여 운영하였다. 6·25전쟁 때 켈로부대 대원들이 등대를 탈환해 1950년 9월 15일 불을 밝히면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현재 불을 비추고 있는 등대는 2003년 12월 새로 만든 것으로 기존 팔미도 등대는 100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행 TIP!  >  팔미도는 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밀물 때는 섬이 2개지만 썰물이 되면 하나로 연결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두 섬이 마치 여덟팔 八 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 같다고 하여 팔미도라 불린다. 팔미도는 연안부두에서 팔미도 유람선을 탑승하면 방문할 수 있다. 무인도라서 편의시설이 없으며 해변 쪽은 군사보호구역이라서 내려갈 수 없다. 팔미도 등대 역사관에 방문하면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팔미도 등대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인천항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팔미로 15

전화번호 : 032-885-0001(현대마린개발 팔미도 유람선) 

이용시간 : 홍보관 09:00~18:00 ※유람선 운항 일정에 따라 팔미도 입도 가능 

휴관일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주요시설 : 팔미도 등대 구등탑, 홍보관 

편의시설 : 화장실 

주변 관광지 : 연안부두



홍예문
무지개 문양으로 통하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된 홍예문은 1908년 축조된 석문으로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 근처에 있다.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일본이 설치한 아치형의 터널 이다. 청일전쟁 이후 인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증가하게 되면서 거주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홍예문을 뚫었는데 초기에는 혈문(穴門) 이라 불렀다.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해 지어졌는데 일본 공병대가 1906년 굴착공사를 하고 청국인 석수가 석축을 쌓아 1908년 완공하였다. 응봉산 산허리를 잘라 높이 13m, 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들었다. 터널 공사를 진행할 때 거대한 암석을 만나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지금도 길옆에는 공사의 흔적인 암석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홍예문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 일본의 토목 공법을 알 수 있는 사료가 되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현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 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행 TIP!  >  홍예문 위로 오르면 인천 앞바다와 팔미도, 영흥도 등 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3가 20

전화번호 : 032-760-6470 인천광역시 중구 문화관광과 

이용시간 : 상시개방

휴관일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주요시설 : 터널 

편의시설 : 없음 

주변 관광지 : 제물포 구락부, 자유공원  



짜장면 박물관
짜장면의 역사를 함께하다


공화춘은 일제강점기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급 요리점이었다. 공화춘의 전신은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 업소인 산동회관이었다.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근대 음식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공화춘은 2012년 짜장면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짜장면박물관은 과거 공화춘의 주방과 접객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으며 화교의 역사를 통해 짜장면의 탄생과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짜장면을 만드는 과정 및 짜장면에 얽힌 유물을 통해 어린 시절 향수를 떠올려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화강암 석축 위의 2층 벽돌조 건물은 화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었다.

여행 TIP!  >  6·25전쟁 이후 인근 인천항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이 자주 찾던 식당인 공화춘은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개발하여 인기를 누렸다. 짜장면의 본적은 중국 산동성으로 1884년 산동성 화교들이 인천에 살게 되면서 귀화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작장면’으로, 볶은 된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달콤한 캐러멜을 첨가하고 물기를 적당히 유지하게 만들며 지금의 짜장면이 되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

전화번호 : 032-773-9812

이용시간 : 09:00~18:00

이용요금 : 09:00~18:00 (입장 마감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주요시설 : 전시실, 기획전시실

편의시설 : 안내데스크, 화장실 

주변 관광지 :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인천아트플랫폼



용궁사
흥선대원군의 기도가 전해지다


영종도 백운산 기슭에 위치한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1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백운사(白雲寺), 구담사 (瞿曇寺)라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이 절에 머물면서 10년 동안 기도를 했다. 1864년에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은 절을 옛터에 옮겨 짓고, 용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종도 중산 월촌에 사는 윤공이란 어부가 꿈을 꾼 뒤 바다에서 작은 옥불을 어망으로 끌어올려 이 절에 봉안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용궁사는 관음전을 비롯하여 칠성각, 용황각,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사는 1854년에 옮겨 지은 것인데, 원주형의 싸리나무 기둥을 비롯하여 뒷면의 덧문, 건물의 여러 곳에 발견되는 태극무늬의 목판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목조건물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요사채에 걸린 ‘용궁사’라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유명하다.
용궁사 관음전에는 1880년 조선 말기 승려이자 화가인 축연과 종현이 함께 조성한 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다. 화폭의 규모는 세로 135.5cm, 가로 174.3cm로 3폭의 비단을 이어서 만들어졌다. 19세기 유행했던 수월관음도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축연이 활동 초기 사용한 ‘연은’이라는 당호가 기록되어 있다. 수월관음도 역시 2016년 2월 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76호로 지정되었다.

여행 TIP!  >  용궁사 입구에는 수령이 약 1,300년으로 추정 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둘레 5.63m, 높이 약 20m, 수관이 약 16m에 달하는 노거수로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용궁사 느티나무는 할아버지 나무가 유독 할머니 나무 쪽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옛날에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용궁사에 기도를 하러 와서 용황각에 있는 약수을 마시고 난 후 할아버지 나무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로 199-1

전화번호 : 032-746-1361

이용시간 : 상시개방

휴관일 : 연중무휴 

이용요금 : 무료 

주요시설 : 관음전, 칠성각, 용황각, 요사 

편의시설 : 화장실 

주변 관광지 : 영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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